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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로’ 4기 정란입니다…솔로 기자의 참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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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35회 작성일 24-07-0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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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씨, 절에 한번 다녀올래요?
천주교 모태신앙이지만 템플스테이를 좋아하고 불교와 꽤 결이 맞다고 생각해왔다. 혹 출가를 하게 된다면 법명을 ‘비움’으로 하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매거진L팀 선배의 제안이 솔깃했다. 아, 근데 <나는 솔로>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거예요. 뭐지? 절에서 사랑이라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절로’ 향했다.
이런 소문은 참 빨리도 퍼졌다. 나도 데려가라는 실없는 농담이 쇄도하는가 하면 절에서는 못 먹으니 든든히 먹고 가라며 고기를 사준 선배도 있었다. 나이 제한 없애야 한다. 나도 급하다는 말은 진심이었던 듯하다.
‘나는 절로’는 범사회적 저출생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로 청춘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대한불교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만남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1, 2기에 이어 지난 4월 3기가 화제 속에 진행됐다. 자격 요건은 딱히 없으나 나이 제한은 있었다. 이번 4기는 1989년생부터 1999년생까지 참가할 수 있었다.
참가신청서에는 흥미로운 질문들이 있었다. ‘마지막 연애는 언제였나요?’ ‘결혼 경험이 있나요?’ 그래도 조계종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주최 행사인데 종교 관련 질문도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문항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난관은 사진 첨부 문항이었다. 보정이 강하게 들어간 사진은 금세 탄로 날 게 분명했다. 한참을 휴대전화 사진첩을 뒤져보다가, 그래도 불교친화적 마인드를 강조하면 플러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정세적 판단에 부처님오신날 조계사에서 찍은 사진을 첨부했다.
며칠 뒤 확정 전화를 받았다. 취재 협조 협의를 한 나도 ‘승인’ 소식에 이렇게 떨리는데, 여느 참가자들은 얼마나 더 설렜을까. 지난 15일 아침, 꼭두새벽부터 청춘 남녀들이 하나둘 조계사에 모여들었다. 슈트 차림으로 힘을 ‘빡’ 준 멋쟁이부터 ‘꾸안꾸’를 추구한 듯한 참가자까지, 안 보는 척 슬쩍슬쩍 견제의 기운이 전해졌다. 맞지, 첫인상이 중요하지. 비뚤어진 옷깃을 한 번 더 정돈했다.
충남 공주 마곡사로 향하는 동안은 맘 편하게 가겠거니 싶었는데, 오산이었다. 이미 쟁탈전은 시작됐다. 담당자가 버스 출입문 앞에서 파란색과 분홍색 종이가 가득 든 바구니를 흔들고 있었다. 좌석번호가 적힌 뽑기 종이였다. 하아, 어색하면 어쩌나. 조심스레 한 장을 뽑아 버스에 올랐다. 염려와 달리 이내 버스 안에서는 와글와글 말풍선이 여기저기서 피어올랐다.
모든 미팅 행사의 첫 번째 순서인 첫인사 시간이 진행됐다. 사는 지역, 직업, 나이와 같은 기본 정보에 불과했지만, 다들 육감까지 싹싹 동원해 서로를 파악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오묘한 전운마저 감돌았다.
목적지인 마곡사 경내에 들어서자 가슴이 웅장(!)해졌다. 야트막한 산기슭에서는 잔잔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웰컴센터에 들어가 법복과 명찰을 받았다. 법복은 소재나 색상으로 보건대 땀에 취약해 보였다. 법복 안에 얇은 티셔츠를 입거나 땀이 날 만한 과도한 움직임은 삼가야겠다는 경계심이 스쳤다. <나는 솔로>와 유사한 점이라면, 참가자들이 실명이 아닌 영숙, 철수, 민준 등의 닉네임을 부여받는다는 것. 지금부터 내 이름은 ‘정란’이다.
본격 프로그램 진행에 앞서 저출생 대응 인식 개선에 대한 훈화의 시간이 있었다. 덕담을 가장한 어르신들의 뻔한 잔소리가 아니라, 친동생을 아끼는 ‘형·언니 재질’의 이야기였다. 조계종은 모든 종류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1박2일간 부처님 자비심 안에서 마음이 꼭 맞는 짝을 찾으시길 기원합니다. 스님의 열린 철학이 담긴 말씀을 듣자 하니 왜 요즘 젊은이들이 불교 문화를 ‘힙’한 화합의 콘텐츠로 바라보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어 참가자들에게 ‘3분 자기소개’ 차례가 왔다. 준비해오라는 사전 공지가 있었던 만큼 모두가 단단히 갖춰왔을 것이 분명했다. K팝 댄스가 취미라고 운을 떼서 기대를 잔뜩 고조시켰던 순희님은 짝이 되실 분에게만 보여드릴 거라고 말해 장탄식을 불렀다. ‘밀당’의 고수가 있을 줄은 알았다. 교보문고 종이봉투에 책 두 권 담아와 한 권은 퀴즈를 맞힌 분께 드리고 나머지 한 권은 마음이 맞는 분께 드리고 싶다는 이벤트의 귀재 주영님도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번 4기는 무려 248명이 신청해 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성 15명, 남성 15명이 참가 자격을 얻었다. 주최 측에서 밝힌 공식적인 선정 기준은 ‘내 짝을 찾는 간절함’이다. 이 외에도 최소한의 직업적 안정성, 지역적 다양성과 외모 등의 조건이 고려됐다고 한다. 30명 참가자의 자기소개만으로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상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가 공유된 시점. 슬슬 ‘맞선’을 준비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이름하여 ‘로테이션 차담 시간’을 위해 참가자들이 짝을 이뤄 마주 앉았다. 모든 참가자가 한 차례씩은 1:1 대화를 나눠야 했기 때문에 커플당 주어진 시간은 고작 5분에 불과했다. ‘자, 이제 다음 옆자리로 옮기세요’라는 신호는 꽤 빨리 돌아왔다. 초집중 면접을 연달아 15번이나 본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석 달 치 에너지를 탈탈 소진한 기분이었다. 옆자리의 현숙님도 나만큼이나 기진맥진해 보였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바로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사랑의 작대기 1회 차. 여성 참가자가 한 명씩 나와 함께 데이트하고 싶은 상대를 지목하는 식이었다. <나는 솔로>에서 지목받지 못한 참가자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고독의 짜장면’ 흡입 장면을 연출하던데, 여기선 ‘비건 짜장면’을 주시려나?
공교롭게도 내가 1번이라 가장 먼저 앞으로 불려 나갔다. ‘난 여기 취재하러 온 거다. 본업에 충실하자. 이성 챙기자.’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저는 랜덤으로 10번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하지만 채 1분도 되지 않아 후회가 밀려왔다. 다음 차례 현숙님은 저는 저 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라며 야무지게 데이트하고 싶은 상대를 지목한 것이다. 아뿔싸. 한 번 지목받으면 다른 참가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그만 천금 같은 첫 번째 ‘찜’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고독정식을 먹은 듯 속이 새카매졌다.
한 차례 핑크빛 회오리바람이라도 지나간 듯 후끈 뜨거워진 현장. 열기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이미 세 차례 ‘나는 절로’ 운영을 통해 완급조절의 노하우를 통달한 주최 측은 홍대선원 주지 준한 스님이 이끄는 선(禪)명상 시간을 준비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스님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세상 모든 것은 머무르지 않고 변화하니 집착하지 말고 순순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사랑하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서로에게 한껏 몰입했던 순간에서 한 발짝 물러나니 오히려 지금 이 순간 각자 자신의 에너지가 오롯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서른 명이 뿜어내는 젊은 혈기는 순식간에 현장의 ‘텐션’을 끌어올렸다. 이어진 레크리에이션 게임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본분을 잊고 그만 너무 신나게 놀아버린 것은.
이미 참가자들도 더는 나를 취재 온 기자로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5개 조를 짜서 팀 점수를 올리는 방식으로 게임을 치르는데 할수록 포인트 욕심이 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복식호흡으로 함성을 지르고 냅다 앞구르기를 하고 심지어 촐랑대며 훌라춤을 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MBTI I 성향이 강해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라 걱정돼요. 최대한 조신하게 지낼 거예요. 버스 옆자리에서 이 얘기를 들었던 광수님은 내가 얼마나 가증스러웠을까.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끝난 뒤 광수님이 다가와 말했다. 기만자라고. 아니 ‘기망자’(기자의 본분을 망각한 자)였던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근데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밤이 찾아왔다. 모닥불 ‘불멍’ 타임을 위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한숨 돌리는 동안 공지가 들려왔다. 자, 이제 원하는 분과 데이트 다녀오세요~ 사랑의 작대기 2회 차였다.
마시멜로를 열심히 굽는 척하며 곁눈질해보니 제법 많은 참가자가 이미 사인을 주고받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대부분 1회 차에서 이어진 커플들이다. <나는 솔로>는 최소 4박5일 촬영한다는데, ‘나는 절로’는 1박2일 안에 ‘승부’를 봐야 하니 여러 후보를 탐색할 여유가 없다.
어떤 언약들이 오고 갔을까. 낭만의 끝 모닥불, 한껏 ‘센치’해지는 밤 시간, 깊은 산속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주는 ‘버프’가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산사의 여름밤이 깊어만 갔다.
<나는 솔로>와 ‘나는 절로’의 또 다른 점은 음주로 점철된 밤이 없다는 것. 참가자들은 남녀가 철저하게 분리된 고즈넉한 숙소동으로 자리를 옮겨 3인 1실의 쾌적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설레는 가슴 진정시키지 못하고 잠을 설친 참가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만 숙면했던 것일지도….
띠링. 잠들기 직전 단체채팅방에 주최 측의 주요 알림이 왔다. 지금까지 가장 마음에 드셨던 분을 개인톡으로 알려주세요. 내일 오전 공개하겠습니다.
이윽고 선택의 날. 대망의 최종 커플 발표가 시작됐다. 요즘 말로 ‘생태계 교란종’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특출난 외모·재능의 소유자가 여러 명 있었는데 그들에게 몰표가 갔을까? ‘나는 몇 표, 너는 몇 표’ 잔인하게 공개되려나? 갑자기 긴장감이 고조됐다.
다행히 최종 선택 결과는 맞선택으로 커플이 된 이들만 짠 하고 공개하는 형식이었다. 선택을 받지 못한 참가자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주최 측의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커플이 발표될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절로’ 4기에서는 총 일곱 커플이 탄생했다. 역대 최다라고 한다.
이 인연이 결혼으로 이어진다면 조계종 큰스님을 주례로 모실 수 있는 등의 ‘특전’을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받는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그 인연에 마음을 쏟고 정성을 다하면 필연이 되고 운명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일곱 커플은 무려 단 1박2일 만에 그 지혜를 행하고 있었다.
커플 됐어? 연락하는 상대는 있어?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질문이 밀려들었다. 나의 답은 지금도 참가자 ‘단톡방’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공개 가능한 취재 결과는 여기까지라는 것. 다만 이 프로그램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나는 절로 4기 정란’이 두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첫 번째는 참가신청서에 ‘셀(카사)기꾼’스러운 사진 첨부는 금물.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힌 최적의 사진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나만이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준비하라는 것.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사람의 초롱초롱한 눈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다.
일상을 벗어나 안온한 공간에서 내게 맞는 사람을 찾아보는 데 집중하는 시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참, 혈기 왕성한 참가자들의 원활한 매칭 활동을 위해 5대 영양소가 잘 갖춰진 식단을 제공하니 미리 고기를 먹고 가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절로 5기’는 오는 8월 10일 있을 예정이다. 어쩜 때마침 칠월칠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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